(냉정과 열정사이)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오래된 일본영화가 있다. 며칠 전 영화의 OST를 오랜만에 다시 듣게 되었는데 음악이 시작되자마자 내 머리속에서는 영화의 남녀 주인공들이 피렌체의 두오모에 오른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또 다시 가보고 싶은 피렌체. 내가 20대 중반에 여행으로 가보고 뇌리에 깊숙히 남아있는 피렌체. 이곳은 르네상스를 주도한 메디치 가문이 만들어낸 문화적인 힘이 느껴지는 곳이다. 
 
필자는 해외여행을 가기 전에 목적지와 관련이 있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소설을 찾아본다. 깊숙히는 아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역사적인 배경을 먼저 공부하는 시간도 갖는다. 그래야 여행의 맛이 더 깊어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유럽여행은 공부할 것이 참으로 많다.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유산이 많은 곳이니 그곳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셀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홍콩은 장거리 여행 시 대표적인 경유지 중 하나이기 때문에 여러번 갔었는데 미리 미리 봐두었던 홍콩영화가 화려한 야경을 빼면 다소 밋밋할 수 있는 도시의 매력을 극적으로 살려주었다. 
 
우연히 문화 컨텐츠를 먼저 접하고 그 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여행지도 있다. 브라질의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의 곡인 ‘The girl from Ipanema(이파네마에서 온 소녀)’를 들으면 ‘리우데자네이루’의 이파네마 비치를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는 1900년대 초를 배경으로한 러시아 드라마를 보고나서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둘러봐야 할 나만의 ‘방문 예정지 리스트’에 올렸다. 
 
이처럼 어떤 장소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은 ‘문화 컨텐츠’와 만날 때 아주 강력한 효과를 낸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영상물 촬영을 위한 ‘로케이션’의 유치는 지역산업의 활성화 및 고용창출 등 경제적인 이익으로 이어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예로 ‘겨울 연가’를 꼽을 수 있다. 춘천의 남이섬은 서울에서 아주 가깝지는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겨울연가’라는 오래된 드라마의 배경이었다는 이유로 상당한 관광수익을 올리고 있다.  
 
몽골 정부에서도 관광업은 광산업과 더불어 중요한 산업으로 꼽고 있으며 이를 활성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는 몽골이 고질적으로 가진 인프라 부족 문제도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만, 몽골의 관광지를 돋보이게 할 ‘스토리’를 담은 ‘문화 컨텐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정부 차원에서 ‘칭기즈칸’을 다시 조명하는데 공을 들이고 있지만, 몽골의 문화적 이미지를 ‘칭기즈칸’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서울처럼 다양한 시각에서 이미지가 소비되어야 한다. 
 
(사랑의 불시작 – 기차역 장면)
 
2020년 7월 현재, 넷플릭스에서 유통하는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 중 하나는 현빈과 손예진이 주인공으로 나온 ‘사랑의 불시착’이다. 극 중에서 북한으로 나온 몇몇 장소와 기차는 실제로는 몽골에서 촬영한 것인데, 난 몽골 관광업계에서 이를 ‘관광 마케팅’에 활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에 매우 놀랐다. 드라마는 작년 12월에 첫 방송을 했지만 2월이 되어도 관련 소식은 없었다. 그 이후에는 전염병 때문에 관광업계에서 아예 손을 놨지만 말이다.  
 
하다못해 울란바토르역에 손예진과 현빈의 실물크기로 한 이미지 조형물이라도 갖다 놓으면 그 앞에서 사진을 많이 찍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지금은 이미지 공유의 시대가 아닌가. 그야말로 자발적 홍보대사들이 세상에 넘쳐나는 시대이다.
 
몽골 관광상품의 개발과 홍보가 단순히 ‘풍경’ 자체에만 몰입된 것이 아닌가하고 넋두리를 해봤다. 몽골에서도 문화컨텐츠와 관광상품의 연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