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열사 기념공원
운영시간
기 간 | 운영 시간 |
1월 1일 ~ 2월 28일 | 폐 장 |
3월 1일 ~ 5월 31일 | 10:00 ~ 16:00 |
6월 1일 ~ 9월 30일 | 09:00 ~ 22:00 |
10월 1일 ~ 12월 31일 | 10:00 ~ 16:00 |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
2001년 7월, 이태준 열사의 업적을 기념하여 몽골에서 부지를 지원하고 우리나라 국가보훈처 및 연세의료원의 재정지원으로 공원을 300평 규모로 준공했고, 이후 2010년 6월 이태준 기념관을 개축했다. 몽골에서 만나는 애국지사의 흔적이 한국인에게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다.
이태준 열사
이태준은 1883년 11월 21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명관리에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반식민지 상태가 되고 다음 해 결혼한 지 3년 만에 부인을 잃자(슬하에 딸 2명이 있음) 상경해 세브란스병원 앞에 있던 김형제상회에 점원으로 취직했다.
김형제상회는 제중원(세브란스병원) 의학도 김필순이 운영하던 곳으로 안창호 등 독립지사들의 비밀 회합 장소였다. 이태준은 이들의 영향을 크게 받아 1907년 세브란스병원 의학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스승이자 동지인 김필순은 안창호와 의형제를 맺은 사이로 1908년 6월 졸업해 한국 최초의 의사 7명 중 1명이 돼 모교에 남아 후학을 가르치면서 일제 침략에 맞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09년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안창호를 간호하고, 그해 말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으로 체포됐다가 이듬해 풀려난 이태준은 안창호의 권유로 신민회의 산하 청년학우회에 가입했다.
이태준은 1910년 8월 일제에 의해 한국이 강제합병 된 다음 해인 1911년 6월 2일 세브란스병원 의학교를 졸업(제2회)해 92번째로 ‘의술개업인허장’을 받았다.
1911년 말 일제가 애국지사들을 대량 검거하기 위해 이른바 105인 사건을 조작하자 김필순은 체포 위기에 빠진 이태준과 함께 중국으로 가서 항일 독립운동에 몸담을 계획으로 중국으로 망명하기로 한다. (1911년 10월 중국에서는 신해혁명이 일어난다.) 12월 말에 중국 난징으로 망명한 이태준은 중국 남경의 ‘기독회의원’에서 의술을 펼치다 처사촌인 김규식의 권유로 1914년 31살에 몽골 울란바토르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몽골에서 이태준은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개설해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연락소로 삼으며, 성병(매독) 퇴치에 앞장섰다. 이 당시 몽골 사람의 70%가 매독에 고통받고 있었다고 한다. (매독은 패니실린 항생제가 나오기 전 불치병이었는데 패니실린은 1928년 영국에서 발견된 것이므로 이때는 패니실린 항생제도 없었다) 몽골사람들은 그를 신인(神人) 혹은 ‘붓다 의사’라 칭송했다고 한다.
1917년 몽골의 마지막 왕인 복드칸 8세의 어의가 된 그는 1919년 7월 ‘에르데닌 오치르’라는 높은 등급의 훈장도 받았다. 몽골 사회에서 두터운 신뢰를 쌓은 이태준은 한인사회당 지하당원으로 활동하며 코민테른 자금 40만 루불 상당의 금괴 운송에 깊이 관여하기도 했고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는 김규식에게 활동비를 대기도 했다. 또한 김원봉이 이끄는 의열단에 가입해 우수한 폭탄 제조자인 마자르를 소개함으로써 의열단 활동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1921년 2월 러시아에서 잔인하기로 악명높아 미친 남작이라 불리며 일본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운게른 시테른베르크(반공주의자)가 몽골을 점령했다. 이때 이태준은 몽골에서 항일운동을 지속해야 한다고 판단하여 피하지 않고 남았다가 러시아 백군의 공산주의자 숙청정책의 일환(러시아 백군은 일본과 한편이었다.)으로 잡혀 39세의 나이로 처형당했다.
불상공원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 바로 근처에 위치
자이승 승전탑에서 10시 방향 아래를 보거나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에 가려고 보면 길 건너에 커다란 불상이 보일 것이다. 높이 23미터로 2007년 만들어진 것으로 불상 서쪽에 높은 아파트가 있지만, 불상이 바라보는 울란바토르 시내는 불상의 시야 높이에 아파트가 낮아 부처님이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불상을 얼핏 보아도 한국에서 많이 보던 모습인데 한국 불교계가 지원하여 한국에서 한국 조각가가 와서 만든 것이다.
불상 옆에 종과 법고도 있어 공원이 상당히 친숙하다. 하지만 사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원래 작은 사원이 두 개 있었다고 하는데 그 자리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불상 공원도 위태롭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불상 지역이 몽골에서 가장 땅값이 비싼 지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 한복판이다. 여행 중 일부러 찾기는 힘들고 자이승 승전탑과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에 들를 때 한국에서 제작한 거대 불상이니 잠시 들려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소셜리뷰 – 이태준 열사 기념공원 / 불상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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