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나바자르 미술관
관람 정보
- 오픈 시간 – 09시~17:30분(4월~9월) / 10시~16:30분(10월~3월)
- 입장료 – 8,000₮
- 사진/비디어 촬영 – 45,000₮/50,000₮
몽골 티베트 불교의 종교적 지도자이자 몽골의 정치적 지도자인 1대 잡증담바 호특트이면서 조각가와 예술가로도 이름을 날렸던 자나바자르를 기념하고 그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개관했다.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 자체도 의미가 있는데, 1905년 건립된 건물은 울란바토르에서 가장 오래된 만주 시대의 상업 건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중국은행으로 사용되다가 1929년대에 소련군 주둔지로 사용되었다. 이후 울란바토르 최초의 국영백화점이 들어섰고, 1966년 미술관으로 정식 개관했다.
자나바자르 (Zanabazar)
은드르 게겡 자나바자르 Өндөр Гэгээн занабазар / Ondor Gegeen Zanabazar (1635~1723)
몽골어로 ‘은드르’는 ‘높은’이란 뜻이고 ‘게겡’은 ‘성스러운 또는 현자’라는 뜻으로 ‘은드르 게겡’은 ‘최고 현자’라는 뜻이다.
몽골 역사에서 자나바자르 이름은 많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몽골의 대표적인 인물을 꼽자면 몽골제국을 이룬 칭기즈칸/오고타이칸/쿠빌라이칸 들과 이후 불교 국가에서는 자나바자르를 들 수 있고, 근대에서는 독립 영웅 수흐바타르를 들 수 있을 정도로 시대를 대표하며 현재의 몽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자주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칭기즈칸의 직계 후손으로 북원이 청나라(숭덕제 홍타이지)에 의해 멸망하는 해에 몽골에서 태어 났다. (북원은 사라졌으나 조공만 바치고 자치권을 인정 받았다가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때 청나라를 공격하여 패배한 이후 지금 까지 내려오는 내몽골/외몽골로 나뉘었다.)
북원이 청나라에 정복당하고 몽골인들을 단합하기 위해 종교의 힘이 필요하여 더욱 티베트 불교를 널리 알렸으며, 청나라도 몽골의 대부분의 남성이 스님이 되어 전투력이 약해지는 것이 좋아 장려하였다.
공산정권이 들어서는 20세기 초까지 청나라는 몽골의 장남은 무조건 출가하도록 하고, 역참 및 과세 면제를 하여 20세기 초에 몽골 남자의 40%정도가 라마승이었다고 하며, 청나라 말기에는 매독균까지 퍼트려 몽골인 대부분이 매독에 고통받도록 하는 등 민족의 씨를 말리려 노력하여 칭기즈칸 시대 정복전쟁 전 및 원나라가 멸망하여 북원으로 지냈을 때도 약 300만명 이었던 인구가 청나라가 망했던 20세기 초에 60만명 이었다고 하니 청나라의 몽골인 억압 정책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
4세때 언어 능력 및 영특함이 보여 할하 몽골부족에서 영적지도자인 ‘게겡’으로 될 인물로 여겨져 14세에 티베트로 보내진 뒤 5대 달라이 라마 밑에서 불법을 공부했다. 이후 달라이라마와 같이 환생하는 몽골의 달라이 라마라 불리는 ‘잡증담바 호특트’가 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현재 10대 잡증담바 호특트는 몽골의 어린이 몸이라고 한다.)
몽골인의 지도자
이후 1653년 18세에 몽골에 와서 틉흥 사원(төвхөн хийд)을 건립하여 할하 몽골 사람들의 정치적 지도자인 왕으로서의 역할과 몽골 티베트 불교 지도자 역할도 하면서 지내다가 1691년 몽골 민족중 다른 부족이 새운 나라인 준가르 나라의 침략으로 할하 몽골인들이 학살 당하고 많은 사원이 파괴 당하자 청나라 4대 강희제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며 자치제로 지내 오다가 완전 청나라에 몽골을 복속 시키며 할하 몽골인들을 유지했다. 자나바자르는 이후 매년 청나라 북경에 방문하였는데 1723년 청의 5대 황제 옹정제 초대로 북경(베이징)에 갔다가 사망하여 청 옹정제가 몽골에 1727년 아마르바야스갈랑트 사원을 지어 사리탑에 안치시켰다.
이 후 몽골 지역은 잡증담바 호특트(자나바자르의 환생인)가 대를 이어서 몽골의 정치적 종교적 지도자로 지내게 된다. (몽골이 청나라에 독립하고 공산정권이 세워질 때 마지막 복드칸이 8대 잡증담바 호특트 이다.)
예술가
현대에 몽골의 미켈란젤로라 불릴 정도로 조각, 회화, 시, 출판, 의료 등 예술적 기질이 뛰어났는데, 틉흥 사원(төвхөн хийд)사원에 있으면서 각종 그림과 조각들을 무수히 많이 만들어서 현재 복드칸 궁전과 처이진 라마 사원 박물관 등 여러 사원 및 ‘자나바자르 미술관’에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또한 ‘소욤보’ 문양도 고안하여 몽골 문자체계를 개혁했으며(몽골 독립의 상징인 소욤보 문양은 몽골 국기에서 볼 수 있다.) 준가르와의 전쟁으로 파괴된 에르덴 조 사원을 복구하기도 하였다.
특히 조각에서는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통해 영혼의 거룩함을 잘 표현하였는데, ‘백색 타라’ ‘녹색 타라’(복드칸 궁전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타라’는 관세음보살의 여성 배우자를 일컫는데, ‘백색 타라’는 아름다운 처녀의 성숙해가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고, ‘녹색 타라’는 생동감 넘치는 둥근 얼굴에다 연꽃을 부드럽게 쥐고 있는 우아한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