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드 칸 (겨울)궁전 박물관
관람 정보
- 휴관일 – 일요일(5월15일~9월 15일) / 화,수요일(9월 16일~5월 14일)
- 오픈시간 – 09시~19시(5월15일~9월 15일) / 09시~17시(9월 16일~5월 14일)
- 입장료 – 어른(8,000₮), 어린이(1,500₮)
- 사진/비디어 촬영 – 사진 촬영(25,000₮), 비디오 촬영(35,000₮)
복드칸 궁전 박물관은 몽골의 마지막 칸인 복드 칸이 기거했던 곳인데, 몽골의 지도자인 칸이자 몽골 티벳 불교의 지도자인 잡증담바 호특트 8세 여서 대부분이 티벳 불교 사원 건물이고, 5시 방향의 문에 들어가 바로 오른쪽에 있는 매표소/기념품 샵과 붙어 있는 2층의 고딕 건물이 복드칸이 20여 년 동안 기거했던 건물이다.
몽골에는 칸이 살았던 4곳(봄, 여름, 가을, 겨울 궁전)의 거주지 중 유일하게 공산주의 세력들에게 파괴되지 않고 남은 곳이다. 파괴되지 않은 이유가 겨울 궁전 건물에 러시아 양식의 건물들이 있어 보존 가치가 있기 때문에 파괴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겨울 궁전 건물은 1893년~1903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6채의 라마 사원과 3개의 문, 칸과 왕비가 기거했던 2층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궁전의 정문은 ‘평화의 문’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고, 복드 칸의 즉위를 기념하여 1912년~1919년 사이에 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지어진 것으로 유명하다. (비극적으로 다 지어지자 마자 중화민국에 의해 칸의 지위를 다시 빼앗긴다) 문은 3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운데 문은 오직 칸만이 지나갈 수 있다 한다. 문마다 미술 그림이 있는데 화려하고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여행객들을 위해 오른쪽 문을 운영할 때 열어 놓는다.
겨울 궁전의 남쪽 5시 방향에 있는 문으로 들어가 바로 우측에 보이는 2층 벽돌 건물에는 당시 칸과 왕비가 살았던 침실, 거실, 식당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의복과 생활용품을 포함하여 마차, 가구 등 실제 사용했던 물건도 함께 볼 수 있다. 복드칸이 세계의 여러 왕에게 받은 선물(러시아 황제가 선물한 황금 부츠도 있다.)과 왕의 수집품, 박제 동물도 눈에 띈다.(복드칸이 동물을 좋아했다고 하여 칸 즉위식 때 박제 선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직접 개인 동물원의 동물들을 박제한 것도 있다 한다) 선물로 받은 150마리 표범 가죽으로 만든 호화로운 게르도 전시되어 있다. 18~19세기 티베트 지역에서 활약했던 작가들의 불교 작품도 많이 전시된다.
복드 칸(Bogd Khan / Богд хан)
1869년 10월 13일 ~ 1924년 5월 20일
본명 : 악왕롭상초이지냠단잔왕축(Agvaanluvsanchoijinyamdanzanvanchüg)
외몽골의 지도자 대칸(황제)
현재 몽골 지역을 외몽골이라 하고, 남쪽 고비사막 부분에 몽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중국 지역을 내몽골이라 한다. (중국 내몽골 자치구 인구가 약 2,500만 명인데 이중 약 400만 명이 몽골족이다. 현재 몽골 외몽골은 약 320만 명) 명나라 건국으로 몽골 지역으로 돌아와 북원을 건국하여 지내 오다 모두 청나라 홍타이지에게 멸망하여 청나라 영토가 되어 지내 왔었는데, 현재 중국 영토인 내몽골은 청 전신인 후금이 건국할 당시부터 합류하여 홍타이지에게 북원이 멸망할 때 원나라 옥새를 후금 칸에게 바치고 대칸으로 옹립했고, 현재 몽골 영토인 외몽골은 준가르나라에 흡수되어 청에 대항하다가 18세기에 중반 청나라에 준가르도 정복당했다. 하지만 내몽골과는 다르게 현재 몽골의 외몽골은 종교지도자 잡증담바 호특트 를 중심으로 청의 지배하이지만 청의 관리 파견자도 없었고 청에 조공만 바치며 지역별 왕공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고, 독립을 항상 갈망하였다. .
그러다가 1911년 7월 청나라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외몽골의 왕공들은 회의를 열어 독립하기로 하고 1911년 12월 29일 잡증담바 호특트 8세를 대칸으로 추대하여 복드칸국이 세워진다. (내몽골은 이때도 중화민국으로 합류하여 독립하지 않았다.)
공산국가 설립으로 인한 마지막 대칸
복드칸국을 설립한 복드칸은 얼마 지나지 않아 1917년 몽골을 지원하던 재정 러시아가 러시아 혁명으로 붕괴하자 중화민국은 1919년 10월 쉬수정의 변방군이 복드칸국으로 출병하여 다시 중화민국으로 복속되어 중화민국 대총통 쉬스창의 사진에 절하는 수모도 겪는다.
이에 담딩 수흐바타르와 허를러깅 처이발상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인민혁명당을 창설하여 1919년 12월 29일부터 몽골 국가원수로 재임하면서 독립운동을 한다. 이때 1920년 9월 일본군의 지원을 받는 러시아 적백 내전에서 쫓기던 백군 잔당 운게른 슈테른베르크 남작(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몽골의 공산주의자들을 처형할 때 이태준열사도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형했다.) 이 몽골의 독립을 돕겠다고 하여 합작을 결정하고 1921년 2월 몽골 수도를 점령했다. (복드칸의 지휘가 복귀되지 않고 운게른 슈테른베르크가 몽골을 통치한다)
그러나 공산주의자였던 담딩 수흐바타르와 허를러깅 처이발상은 몽골인민유격대를 조직하고 몽골인민당을 창설하여 소련 적군의 지원을 받아 중국군 잔당을 소탕하고 운게른 슈테른베르크를 격파하여 1921년 7월 수도를 탈환한다.
이후 공산국가의 군주제의 군주는 일반적으로 폐위되거나 처형당한 것과 달리 몽골 독립에 기여하고 몽골 민중의 존경을 받아 1921년 12월 29일부터 1924년 5월 20일 병사할 때까지 몽골 국가 주석을 역임하고 복드칸 겨울 궁전에서 생활했다. 물론 실권은 공산당의 담딩 수흐바타르와 허를러깅 처이발상에게 있었다. (같은 해에 담딩 수흐바타르도 병사 하고 소련 스탈린의 도움을 받아 허를러깅 처이발상이 몽골 인민 공화국을 만들고 실권을 잡고 1952년 병사할 때까지 독재정권을 유지했다.)
잡증담바 호특트 ( Jebtsundamba Khutuktu / Жавзандамба хутагт )
몽골의 티벳 불교 정치 지도자를 일컫는 말이다. 티벳 불교 지도자를 달라이 라마라고 하는데, 몽골의 달라이 라마와 같은 것이다. 북원이 멸망 후 청나라 지배 기간 실질적인 몽골의 지도자 역할을 했으나 현재는 몽골의 티벳 불교 지도자 역할만 한다. 달라이 라마와 같이 환생으로 계승되어 이어지는데 이는 1대부터 계속 같은 사람이 육체와 혈통과는 상관없이 계속 환생하면서 이어진다는 의미이다.
1대 잡증담바 호특트는 칭기즈 칸의 후예인 할하 몽골의 수장 아들인 자나바자르 였다. 그런데 1대와 2대 이후의 잡증담바 호특트는 모두 티베트 출신이다. 8대인 복드 칸 도 티베트에서 어린 생활을 하다가 몽골로 와서 잡증담바 호특트가 되었다.
현재 10대 잡증담바 호특트가 이미 태어났으나 2016년에 달라이 라마 14세가 몽골에서 이미 태어났지만, 너무 어려서 공개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하며, 9대는 몽골의 공산화로 더 이상은 잡증담바 호특트는 없다고 하여 인도에 망명했다가 몽골이 민주화되고 다시 귀국해서 2012년 몽골의 어린이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하며 입적했다.
소셜리뷰 – 복드 칸 (겨울)궁전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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